
Stirling castle
스터링 성은 스코틀랜드 스터링에 위치한 역사적이고 건축적으로 중요한 성으로, 대부분 15세기와 16세기에 지어진 것입니다. 동서 및 남북 주요 도로를 지배하는 이 요새의 전략적 중요성은 스코틀랜드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리버 포스(River Forth) 위의 고대의 소멸한 화산 꼭대기에서 주변 지형보다 250피트(75m) 높이로 서 있는 이 성은 모든 방향에서 탁월한 전망을 제공합니다. 스튜어트 왕조의 주요 왕실 요새였으며, 로버트 2세 시절부터 1707년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연합 때까지 왕권의 중심지였습니다. 스터링 성을 차지한 자는 스코틀랜드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전해졌습니다.
스터링에는 선사 시대부터 요새가 있었지만, 성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2세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성은 역사적으로 최소 16차례의 공격을 받으며 폭력의 소용돌이를 겪었습니다. 1304년,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에 의해 오랜 시간 동안 잔인하게 포위되었으며, 10년 후 배너번 전투(Battle of Bannockburn)에서 잉글랜드 수비대가 방어하고 있을 때 로버트 브루스에 의해 또 다시 포위되었습니다. 1452년, 제임스 2세(James II)에 의해 저녁 초대를 받았던 더글라스 8세 백작(8th Earl of Douglas)은 찔려 죽임을 당하고 창문을 통해 던져졌습니다. 제임스 6세(James VI)에 대한 반란자들이 1584년 스터링 성을 점령했습니다. 1746년, 청년 위조자(The Young Pretender)가 성을 차지하려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스터링 성의 대부분 건물은 15세기 후반 이후에 지어진 것입니다. 제임스 4세(James IV)는 약 1500년에 138피트 x 47피트(42m x 14m) 규모의 대홀(Great Hall)을 지었으며, 이는 지금도 경외감을 주는 공간입니다. 다니엘 디포(Daniel Defoe)는 이를 “유럽에서 내가 본 것 중 가장 훌륭한 홀”이라고 칭했습니다. 왕실 궁전은 1540년대 제임스 5세(James V)를 위해 건설되었으나, 그는 완공된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의 딸 메리(Mary)는 이 성의 왕실 예배당(Chapel Royal)에서 9개월의 나이에 스코틀랜드 여왕으로 즉위하였고, 그녀는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이 성에서 보냈습니다. 성벽에 있는 작은 구멍은 그녀가 엿볼 수 있도록 특별히 만들어졌다고 전해집니다. 그녀의 아들인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James VI, 후에 잉글랜드의 제임스 1세 James I)는 예배당에서 세례를 받았고, 1594년에 이를 재건축하였습니다. 왕실 예배당과 대홀은 1990년대에 복원되었으며, 전체 왕실 궁전은 2001년부터 2011년까지 철저한 복원 작업을 거쳤습니다. 왕의 구 건물(King’s Old Building)은 현재 아르가일과 서더랜드 하이랜더스(Argyll and Sutherland Highlanders) 연대 박물관(Regimental Museum of the Argyll and Sutherland Highlanders)의 본거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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